그저 과정일 뿐이에요
오선화작가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 드림성전에서 중·고등부 학생 연합 초청강사로 모셨을 때였으며, 2019년 4월 5일 믿음성전 금요성령대망기도회에서 두 번째 만나게 되었다. 3년 전에는 교사 직분자로 강의를 듣게 되어 학생들을 이해하고, 교사로서의 자세를 가다듬는 시간이었다면 이번 기도회에서는 성도로, 교사로, 엄마로 강의를 듣게 되어 더 풍성한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었다.
청소년 사역자 오선화작가는 청소년들에게 써나쌤으로 알려져 있는데, 죽고 싶을 만큼 고통 가운데 있는 학생들을 만나서 아픈 소리를 들어주고 숨 쉬게 도와주며, 그들에게 적은 원고료로 맛난 치킨 먹여주며, 그들 스스로 성장하고 빛날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노랑머리, 빨강머리 학생들의 친구 같은 쌤이시다.
자녀들도 부모를 봐주고, 부모에게 져준다는 것을 알자.
어느 꿈이 없던 학생이 드디어 자신이 드러머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어 부모에게 말을 했더니, 드러머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아이가 바라는 꿈이 부모가 바라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반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가 바라는 직업과 학생들이 바라는 직업이 다를 때 아이들의 꿈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오선화작가는 힘주어 말한다. 요즘은 복합적인 직업이 많다, 예를 들어 인터넷 장의사가 있는데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나의 정보를 찾아서 없애주는 직업이다. 현재 100여 가지가 넘는 직업이 있다고 볼 때, 부모가 10가지 직업을 안다면 학생들은 30여 가지의 직업을 알고, 진로상담사는 50여 가지의 직업을 알고 있을 뿐인데, 부모의 고정관념 속에 학생들의 진로를 결정하려고 하는 것은 모순임에도 대부분 부모가 이기고 만다. “제 꿈 접기로 했어요. 부모님 뜻 따를래요.” 자신을 위해 희생하시는 부모를 걱정하고, 부모를 배신할 수 없어서 어렵게 찾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며 안타까워하는 오선화작가.
인생에는 속도와 방향이 있다.
인생은 속도와 방향 모두 중요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계속 직진만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는 돌아가는 길도 있고, 올라가는 길도 있고, 다시 후진해야하기도 한다. 만약 보기에 아이가 돌아가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방향을 잡는 중인 것이다. 우리의 삶은 방향이다.
성적이 나빠, 취직이 되지 않아 집이 불편해지는 건 잘못된 것이다. 한 학생이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했으나 오히려 이전보다 성적이 더 떨어져 집에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성적의 꼬리표(학업성적표)만 보고 실망하여 꾸겨서 쓰레기통에 버렸을 때, 그 아이는 마치 자신이 구겨져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럴 때 어머니가 자신을 믿어주었으면 “이번에는 성적이 떨어졌지만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해서 성적 올릴게요” 라고 말했을 텐데 아쉬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집이 언제부터 조건이 좋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되었느냐며 반문하는 오선화작가.
하나님이 나에게만 주시는 만나와 꽃이 있다.
사람들에게 자랑할 깃발 하나가 없어, 이거 하나님의 계획이 아닌 거 아냐? 낙심하고 의심하기도 하는 우리. 그러나 그 고난 속에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만나가 있고, 그걸 뛰어넘을 수 있게 하는 도움이 반드시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은 직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에버랜드를 가려고만 해도 직진 길이 있고, 우회전, 죄회전 그리고 또 직진 길을 지나야 목적지인 에버랜드에 도착한다.
우리는 종착지 깃발이 있는 곳에 가기 위해 직진만 있고 평탄한 길만 있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언덕길도 주시고, 구덩이, 깊은 수렁 같은 곳도 주시며 때론 길이 끊긴 곳 같은 길도 주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길이 끊긴 곳 같은 길에 다리가 놓여져 있었고, 깊은 수렁 같은 곳에 작은 배를 두어 나올 수 있게 하신다.
인생 길 절벽 끝에서도 꽃을 볼 수 있어 살 수 있고, 끝없는 사막 길에서도 오아시스를 만날 때 감사하듯이 꽃을 발견할 때까지, 오아시스를 만날 때까지 살 수만 있다면 감사하지 않겠느냐고 힘주어 말하는 오선화작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사진을 보고 3일여를 꺼이꺼이 울었다는 오선화작가는 어릴 적 어머니를 도와 쪽가위로 옷 라벨을 자르던 중 손가락을 다쳤는데, 그때의 심한 통증 기억 때문에 동생이 자신과 같이 다쳤을 때 더 크게 울며 걱정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 어린 예수님이 목수이신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숱하게 보았을 못들, 때론 나무에 박히고 때론 잘못 박아서 손을 다치게 했던 그 못들이 나(예수님)를 박으려고 들려질 때 얼마나 무섭고 두려우셨을까? 또 못 박히실 때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하니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고 한다. 십자가 지시지 않아도 되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다가오는 못을 피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고통 당하셨다는 생각에 애통하던 오선화작가는 소외되고 아픈 아이들을 예수님의 심정으로 마음에 품으며 지금까지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오선화작가가 예수님의 십자가는 끝일까요? 과정일까요? 물었을 때 성도분들은 과정이라고 크게 대답하셨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임을 오선화작가와 우리 모든 성도분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과정인 것처럼 우리의 고통스런 지금, 현실도 과정일 뿐임을 알아야 하며, 예수님이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자녀들이 아파하는 것을 보시면 아파하시지 않겠느냐고 힘주어 말하는 오선화작가.
할 수 없는 걸 요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걸 칭찬하자.
공부도 달란트일 뿐,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우를 범하는 건 아홉 개를 잘하고 하나를 못 하면 하나만 마저 잘하면 될 것 같아서 자꾸 못 하는 걸 요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상처가 되는 것이다.
90%의 뇌가 밖으로 흘러 나와 생존이 불투명했던 박모세 학생은 조모와 부모님의 결단으로 뇌수술을 강행하였는데, 믿음이 신실하셨던 조모의 간절한 기도와 어머님의 기도 그리고 온교회 성도분들의 중보기도로 10%의 뇌를 지키는 수술이 기적적으로 성공했고, 더욱 놀랄 일은 60%의 뇌기능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수술 후 누워서 스포이드로 우유를 섭취해야 했던 아이가 자라면서 한 번 들은 노래는 절대 잊지 않는 절대음감인 걸 가족들이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성악을 전공하여 경기장에서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할 수 있는 것, 하는 것을 칭찬하고, 내 자녀를 소중히 생각하여 오늘 숨 쉬고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자고 말하는 오선화작가.
지금(현재)은 선물이다.
자녀의 죽음 앞에서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 내가 널 얼마나 의지했는데, 내가 어떻게 살라고 그렇게 가버렸냐”고 통곡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이 애틋한 사랑 고백을 하루만 일찍 그렇게 아이에게 직접 말해주었더라면 그 아이는 죽지 않고 어머니 곁에 살아 있지 않았을까? “지금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너무 늦을지도 모릅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오선화작가.
끝으로 오선화작가는 할 수 없는 걸 요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걸 칭찬하며, 지금 사랑하고, 많이 안아주고 이 과정의 길을 함께 가자고 당부하며 강의를 마쳤다.
기도회를 마치고 성전을 나오는 길에 성도들과 인사를 나누던 오선화작가와 만나 포옹으로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고, 3년 전 강의를 듣고 감동 받아 아주 조금이나마 흉내라도 내려 애쓰고 있다고 말씀 드린 후, 담임목사님께서 오선화작가를 향해 축복해 주신 기도내용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오선화작가님, 하나님의 편지가 되고, 향기가 되어 오래도록 많은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역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