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문화

10대 교향곡 (8) - 3위 : 모짜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Jupiter)"

  • 작성자조재영
  • 등록일2021-10-28 21:14:41
  • 조회수142
  • 운영날짜2021-12-31

10대 교향곡 시리즈를 시작한지 벌써 6개월 가까이 됩니다. 10위인 드볼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4위인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에 이르기까지 최소 5번 최대 10번은 들은 후에 이 글을 올렸는데 지금도 다시 들어보면 어려운 곡들이 여럿 있음은 그 작곡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음악만 이해하려 하는 우(잘못)을 저지렀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모짜르트의 교향곡은 모짜르트(1756~1791)를 이해하려 관련 책을 읽어보려 했습니다. 제레미 시프먼의 저서 "모짜르트, 그 삶과 음악" 을 통해 아버지 레오폴드 모짜르트의 자식 사랑과 교육 등은 모짜르트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4세부터 20세까지의 음악 여행은 모짜르트를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연주자 및 작곡가로 성장시켰다면, 한편으로는 초등 및 중등 교육을 받지 못함으로 또래의 친구들이 없었습니다. 외톨이였던 것입니다.  당시 최고의 계층이었던 교황, 황제 그리고 수많은 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모짜르트는 21세 성인이 되면서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려 했고 또한 귀족을 위한 음악에서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극음악(오페라)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전하려 노력한 것은 그 당시 최고의 작곡가였던 하이든 등과는 다른 시도였습니다. 이는 베토벤에게도 이어져 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작곡 만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베토벤을 후원하던 한 귀족이 그 당시 유럽을 휩쓸던 프랑스 군인들을 위한 음악회에서 음악에는 관심이 없고 군인들과의 대화에 힘쓰고 있는 것에 화가 난 베토벤은 음악을 멈추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사태(?)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후원이 끝이 났지만 자부심이 강한 베토벤은 자기 음악을 무시하는 귀족과 프랑스 군인들을 위해 연주를 할 수 없었고, 이를 계기로 독립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1770년 4월, 14세였던 모짜르트는 그의 아버지인 레오폴드와 함께 로마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을 만나고 음악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연주된 곡은 너무도 아름다웠기에 하나님에게만 헌정하고 일반 대중에게는 공개할 수 없는 17세기 작곡가 알레그리의 "미제레레"였습니다. 외부로 유출되면 종교적으로 파문을 당하는 당시로서는 사형과 같은 엄격한 규칙으로 유명했던 곡입니다. 그런데 이 곡을 다 듣고 숙소로 돌아온 모짜르트는 앉은 자리에서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서 전곡을 악보로 옮겼습니다. 외부로 유출된 것을 확인한 교황은 그 자초지종을 알고난 후에 오히려 모짜르트에게는 좀처럼 수여하지 않는 '황금박차 훈장'을 모짜르트에게 수여하였습니다. 14살밖에 안된 소년에게 이러한 영광이 베풀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1781년 26세 이후 모짜르트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정착하여 자유롭고 활기찬 작곡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불멸의 명작들을 잇달아 써내려 갔습니다. 많은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고,오페라 "피가로 결혼"을 초연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어 완성된 대작 "돈 지오반니"가 프라하에서 초연되어 또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아버지와 누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버의 딸과 결혼한 모짜르트는 가족의 불행을 이겨내지는 못했습니다. 자녀 4명 중 1명 만이 살아났으며, 이는 그의 음악에도 반영되어 슬픈 단조의 곡들이 작곡되었으나 이 또한 죽음의 슬픔을 이겨낸 명곡들이었다고 합니다. K304 바이올린 소나타와 K310 피아노 소나타 그리고 K466 피아노 협주곡 20번 등이 그렇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낭비벽이 심했던 모짜르트는 말년에 빚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친구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생활해야만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도 모짜르르트의 창작 열기는 댜단했다고 합니다. '모짜르트, 그 삶과 음악'의 표현을 빌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말년에 경제적으로 몰락하면서 모짜르트는 단지 역사의 피해자였던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창의적 충동의 포로였다. 비유적인 의미에서만 아니라 글자 그대로 그랬다"라고 말입니다.

 

모짜르트가 사망 3년전인 1788년에 작곡한 교향곡 39번~41번 3부작은 명곡들로서, 그때까지의 교향곡들이 30분 이내의 소편성인데 반해 이 3부작은 대편성 교향곡들로 이루어졌으며, '주피터'라는 부제가 붙은 "교향곡 41번"은 작곡기법이 정점에 도달했음을 잘 보여주는 곡으로 40분에 가깝게 연주되는 대편성 곡입니다. 베토벤 이전에 작곡된 교향곡 중에 가장 최대 규모의 곡입니다. 특히 4악장이 음악기법과 음악사에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미 바흐를 정점으로 구식 중의 구식이 된 푸가 방식으로 작곡된 악장으로 아주 장대한 곡을 만들어 냅니다. 여기서 푸가(fugue) 방식이란, '하나의 악기가 주제를 나타내면 다른 악기가 그것을 모방하여 대위법에 따라 좇아가는 악곡 형식'으로 바흐 작품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였던 방식입니다. 돌림노래 형식과 유사합니다.

 

이 교향곡에 붙은 '주피터 (Jupiter)'라는 별명은 하이든의 후원자이며 바이올리니스트 겸 오케스트라의 리더인 요한 페테 잘로몬이 붙인 것으로, 그는 1819년 10월 이 교향곡을 연주할 당시 이런 부제를 처음 사용한 이후 1821년 3월 런던 필하모닉협회 연주회에서도 사용했습니다. "과연 이 41번 교향곡은 그리스 신화에서 모든 신들의 제왕이었던 주피터의 이름에 걸맞게 웅장하고 장대한 규모의 작품이다"라고 말입니다.

 

1악장은 관악기와 현악기의  힘찬 느낌의 시작하여 현악기 만의 우아한 연주와 목관악기의 부드러운 음색이 생기가 넘치는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2악장은 느린 템포의 우아한 악장으로 모짜르트 특유의 애수가 깃들어 있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3악장은 당당하고 품위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4악장은 소나타 형식과 푸가 풍의 기법이 절묘하게 혼합된 대단히 정교한 음악으로, 마치 신앙고백을 반복하듯 끊임없이 반복되는 크레도 선율과 다섯 가지의 피날레 주제가 마법처럼 얽히며 전개되는 동안 숨막히는 긴장감마저 느껴지는 곡입니다.     "끝"

 

 

* 유투브 상 유명 연주

    1. 칼 뵘 지휘 : 비인 필하모닉

    2. 칼 뵘 지휘 : 베를린 필하모닉

    3. 로린 마젤 지휘 : 갈라시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4.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지휘 : 비인 필하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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